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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11. <부정공>첨지공휘현보유사(僉知公諱顯普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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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정공>관수공휘현두유사(觀水公諱顯斗遺事)
觀水公諱顯斗遺事 公諱顯斗字樞伯號觀水翁公忠孝根天幼背慈顔以未得一日之養爲終身至痛及値喪期周甲追服擧哀一如袒括之日逮夫 正廟陟方築壇望哭人或譏其太過公曰吾雖草野逸民豈可無芹曝之微忱乎性潭宋先生題贈忠孝傳家四大字盖深警推許之意也晚卜一小亭於桐江上扁以觀水日與士友逍遙吟詠自適其志平日行義累著於鄉道狀 관수공휘현두유사(觀水公諱顯斗遺事) 공의 휘는 현두(顯斗)요, 자는 추백(樞伯)이며, 호는 관수옹이다. 공은 충효가 천성적으로 지극하였으나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하루의 봉양도 받들지 못한 것을 종신지통으로 삼아 상기주갑(喪期周甲)을 당하면 따라서 복 입고 슬퍼하기를 한결같이 초상 때같이 하였다. 정조(正祖)가 승하(昇遐)하매 단을 쌓고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혹 너무 과한 일이 아닌가 하고 비웃으니 공은 말하되 「내 비록 초야에 묻힌 백성이나 어찌 가히 미나리를 드린 적은 정성이 없을 것인가」 하였다. 성담(性潭) 송 선생이 충효전가(忠孝傳家)라 크게 四자를 써 준 것은 대개 추허(推許)의 뜻을 깨우친 것이다. 늦게 공강(桐江) 위에 작은 정자를 짓고 관수로써 현판하고 날로 사우(士友)와 더불어 노닐며 읊는 등 스스로 그 마음을 편안히 하였고 평일 행의를 여러 번 향도 천장에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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